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

평화가득하소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

선교지역 소식

평화가득하소서 선교지역 소식
[에콰도르 소식] 2025년 04월 제37호-에콰도르에서
작성자 :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sicms1004@gmail.com) 작성일 : 2025-04-18 조회수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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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라(로마 6,8)


이용우 요한 베르크만 신부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사도 11,26).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스승으로 삼아 삶의 가치와 지향을 배우며, 그분을 모범으로 삼아 살고 죽기를 선택하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벗어난 가치와 지향, 삶과 죽음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서 영원한 삶에로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이룩한 것이며,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본받고 따름으로써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지고 부활을 희망하지 않는 이들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십자가 죽음을 피하려는 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만이 이루고 얻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입니다. 선교란,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하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다른 나라에 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당신의 고향 하느님 나라를 떠나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가깝게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선교하시면서 사람들의 온갖 몰이해와 반대에 직면하셔야 했고, 그들의 그러한 몰이해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셔야 했으며, 끝내는 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선교사 예수님 모범을 따르며, 주 예수님의 명령을 받들어 그 사명을 수행하면서 기꺼이 십자가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고난의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마르 8,34)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믿는 사람으로서,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실천하는 가운데에 부활에 이르고자 희망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또한, 그분처럼 다른 나라에 나아가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함으로써 그분을 따르는 가운데에 나의 성소를 이루고자 열망하는 선교사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로서나, 선교사로서나, 이러한 희망과 열망에 있어서 십자가의 길을 외면할 수는 없지요. 필연적인, 피할 수 없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님을 따라서, 또는 그분을 따르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매우 어렵습니다. 선교 현지에서 언어와 문화와 의식과 음식이 너무 다른 이들에게 선교하기는커녕 함께 살기조차 어려운 것이 선교 현실입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저는 19세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하신 프랑스 신부님들을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교회 역사의 첫 100년 동안 총 스물여섯 분의 파리외방전교회 사제들이 이 땅에서 선교하셨는데, 그분들 중 스물두 분이 평신도들과 함께 순교하셨습니다. 두 분은 병환 때문에 순교하지 못하였고, 두 분은 박해 말기에 추방당하는 바람에 순교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추방당한 두 분 중 한 분은 순교하지 못하고 추방당한 것이 너무도 억울하여, 중국에 일단 갔다가 다시 조선으로 재입국해서 죽을 때까지 선교하였습니다.


이땅에서 선교하시고 순교하신 프랑스 선배님들의 경우에 비추어 보면, 선교는 곧 순교였습니다. 그리고 이 순교는 곧, 자기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고서 죽음을 마다 않고 예수님을 삶의 끝까지 따름의 완성이었습니다. 하여, 중남미에서 선교 중 어려울 때마다, 박해 중인 우리 땅에 이역만리에서 몰래 숨어들어와, 평신도들과 함께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 선배들을 생각합니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이 정도 가지고 어렵다, 힘들다 불평할 수 없다.’고 다짐합니다.


사순 시기는, 회개와 보속의 고난을 치르며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어찌 보면, 중남미에서의 선교생활은 일년 삼백육십오일 날마다 사순 시기를 지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선교생활의 고난만을 생각하며 힘들어하거나 어려워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진정한 선교사의 일상일 수는 없지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름으로써 느끼는 자부심도 있고, 고난의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면서 성소의 성취에 이를 것이라는 희망도 있고, 그분을 따르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 나약한 나에게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나약한 마음을 가지고 강한 은총을 받으며, 선교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 하는 것이라는 자각도 있습니다. 올해의 사순 시기를 지내며, 더욱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선교생활의 의지를 더욱 다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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