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노희성 베드로(본지 편집장)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고, 우리나라에도 사제가 부족한데, 왜 다른 나라를 도와주어야 하고, 다른 나라에 사제를 파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에 대하여, 어느 주교님께서는 우리나라가 아주 가난했던 시절,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시절을 생각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다른 나라에는 과연 가난한 사람들이 없었을까요? 조선에 사제들을 파견한 프랑스(파리외방전교회)에는 사제가 모든 분야에서 충분했을까요? 그 시절에 우리나라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만일 ‘우리나라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고, 우리나라에도 사제가 부족한데, 왜 다른 나라를 도와주어야 하고, 다른 나라에 사제를 파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하며, 자기 나라 사람들과 자국 교회만을 생각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 총재이신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님께서도 ‘우리나라도 전교 지역인데 왜 다른 나라에 한국인 선교사제를 보내야 하느냐는 의문 제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변하신 바 있습니다(본 소식지 제29호 대주교님 인터뷰 참조).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생각하면서, 천국과 지옥의 진수성찬에 관한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똑같이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고 음식을 먹기 위한 긴 젓가락이 놓여 있는데, 각자 자기 입에 음식을 넣으려고 긴 젓가락을 사용하다가 아무도 음식을 먹지 못하면 지옥이고, 반대로 상대방에게 서로 먹여주면서 함께 충분히 진수성찬을 즐기면 천국이라는 이야기입니다. ... 우리나라도 아직 복음화율 10%밖에 안 되는 선교 지역이고 우리 내부적으로도 선교적 투신이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긴 젓가락으로 상대방의 입에 음식을 넣어주듯이 우리도 부족하지만 다른 나라를 도와주고 또 우리도 도움을 받고 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고 선교라고 생각합니다.”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 선열들의 거룩한 피에 힘입어 주님의 은총을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는 2005년 2월 19일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셨던 정진석 대주교님(그 후 2006년 3월 24일에 추기경으로 서임되심)의 창립 인준으로 설립되어, 내년 2025년이면 설립 20주년을 맞이합니다. 선교회 소속 선교사제도 두 자릿수에 진입하였고, 무려 6개국(볼리비아, 파나마, 페루,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에서 선교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 후원회원들의 기도와 재정적 도움으로 선교사제들은 미사와 고해성사 등의 성사 집전뿐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기도 하고(지난 코로나 상황에서는 집집마다 구호품을 직접 전달하기도 했음), 현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우리나라가 가난했을 때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받았던 것을 비슷하게라도 되갚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의 후원금은 네 가지 종류, 곧 (통상) 후원금, 선교지 공소건립금, 장학기금, 그리고 선교회 건축기금으로 운용되고 있습니다. 선교사제와 신학생 생활비와 차량 구입비를 비롯한 선교활동비 등의 통상 경비 마련을 위한 후원금과는 별도의 지향으로 모금하는 후원금은 각기 구체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상대적으로 큰 금액이 필요한 경우에 마련된 것입니다. 선교사제들이 사목하는 현지 공소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모으는 선교지 공소건립금, 현지 학생들의 학업을 지원하여 장기적으로 가정들의 생활 개선을 도모하는 장학기금, 그리고 서울 한남동 3구역 재개발로 철거하게 된 기존의 한남동 선교회 본부 겸 신학원을 대신할 선교회 본부 겸 신학원 건축기금입니다.
선교회 본부 사무국은 이미 2024년 2월 7일 명동성당 영성센터 내 사무실로 이전하였고, 한남동 지역 재개발 완료 예정인 2028~2029년에 맞추어 선교회 본부 겸 신학원 건축도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송영호 대표신부님과의 대담에서도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이 건축은 최소의 비용으로 아주 검소한 재질로 최상의 표현을 해낼 것입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면 돈을 쓰지 않고, 고급스럽고 화려한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실용적인 건물이면서도 그곳에서 우리 모두가 기쁘게 신앙생활도 하고 신학생 양성도 하고 사제들에게 쉼의 공간도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본 소식지 제33호 송영호 안토니오 대표신부 대담 참조).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 본부에는 후원회원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됩니다. 후원회원들의 영적 성장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미사와 피정 등이 이루어지고 상호 친교의 장도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현지 선교에서 지친 사제들의 쉼의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크나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몇 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는 선교사제들이 적절히 쉴 곳이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그분들이 편히 쉬면서 활력을 회복할 만한 곳을 제공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사도행전 16장 11절 이하에 ‘리디아’라는 여인의 이름이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 필리피라는 곳에 가셨을 때에 그곳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자색 옷감 장수였던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사도 16,15) 하고 청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 일행이 리디아의 집에 머물렀는지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리디아’라는 이름과 이 여인이 한 말이 이렇게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를 후원하고 선교사제들을 돕는다고 해도 리디아처럼 우리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인 선교사제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에게 상을 주시는 것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현재 천주교서울국제선교회의 후원회원이 약 8,000명입니다. 선교회 본부 겸 신학원 건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기쁘게 신앙생활도 하고 신학생 양성도 하고 사제들이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편히 마실 수 있는 은총의 자리가 마련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며 ‘사제들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도움을 청하며, 건축기금 납부와 별도로 ‘후원회비 두 배 운동’을 제안합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이지만 글쓴이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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